율마 래버틴, 디트리히 슈뢰더, 한스 슈티르너……. 남자에게는 여러 이름이 있었다. 어느 것도 본명은 아니었다. 남자가 가진 이름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은 ‘로키’. 고대지구의 북구 신화에서 유래한 장난스러운 이명은 이데아의 정보시장을 이용하는 협잡꾼들 사이에서는 마치 신처럼 불리는 이름이었다. ‘로키’는 산업 스파이, 블랙햇 해커, 정보상, 사기꾼이었다...
조용한 연구실 안에 작은 착신음이 울렸다. 그는 뜨거운 커피잔을 입가로 가져가다 말고 데스크 위에 놓아둔 패드를 들여다본다. “안녕하세요. 어머니……아뇨, ‘엄마’ 는 아직 좀 안 익숙해서. 으……좀 봐주세요. 예. 잘 지내셨어요? 아, 예. 저야, 아뇨……뭐, 비교적 잘 지내는 편입니다. 월급 쓸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긴 하지만 말입니다. 예. 예. 못...
그는 안경을 벗어들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벅벅 문지른다. 짓눌린 신음이 절로 새어나온다. 몸을 젖혀 기대니 의자와 허리에서 동시에 삐걱 소리가 난다.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있던 문장들처럼 낡고 흐릿해진 눈을 비비는데, 가느다란 손가락이 그의 손과 얼굴 사이로 미끄러져들어온다. “베레티?” “피곤해요?” “조금 졸리네요.” 그는 나른한 한숨을 내쉬며 의자 팔걸이...
그가 자신의 맹목을 인지하는 과정은 실로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함께 해온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그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그녀는 정말……완벽했다. 어린 숲에 내리는 햇살처럼 화사한 미소. 강조하고자 하는 단어마다 독특한 악센트를 넣어 발음하는 조근조근한 목소리. 손가락의 부드러운 움직임. 농익은 과즙처럼 선명한 색의 입술. 천진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그...
“으으…….” “긴장 풀어요…….” 그는 고개를 숙이고 나지막한 신음을 토한다. 그녀는 그의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달래듯이 속삭인다. 그는 혀를 내어 말라붙은 입술을 축인다. 속이 죄어드는 느낌에 조바심이 났다. “노력중인데 잘 안 되는군요……당신은 긴장되지 않습니까?” “이미 우리 손을 떠난 일인걸요. 만약 ‘문제’가 생기더라도 우리에게 그것을 '고칠...
“잘 먹겠습니다.” 때는 느긋한 점심시간. 캐러밴 본선 연구단지, 문화예술교류연구소 공용 휴게실의 조명은 연합 표준시에 의거한 함내 환경정책에 따라 따스한 정오의 햇살을 모사하고 있었다. 연구원들은 하얀 테이블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잡담을 나누며 식사를 한다. 그녀와 그와 그의 선배도 조그만 테이블에 둘러앉아 점심식사를 막 시작한 참이었다. 주변으로부터 흘끔...
“이렇게 ‘화려한’ 곳은 처음인걸요.” 그녀는 벽걸이 장식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수첩에 무언가를 꼼꼼히 적었다. 비단실로 하날뫼의 건국신화를 아로새긴 타피스트리는 오랜 옛날 함장이 도시 하나를 살 수 있는 분량의 금을 주고 손에 넣었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물건이었다. 그는 자신의 십년치 연봉으로도 여기 달린 장식술 한토막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눈을 ...
“그걸 하나하나 대답해주고 있다가는 큰일납니다.” 그는 넌덜머리를 내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녀의 등장은 연구단지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소문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게 된 연구원들은 문화예술교류연구소 내부를 돌며 시설 안내를 받는 그녀에게 몰려들어 앞다투어 말을 걸었다. 연구원들은 궁금한 것이 많았고, 으레 그러하듯이 예의가 없었다. 사방에서 ...
그는 긴장한 얼굴로 연구실장의 사무실 문 앞에 서 있었다. 오늘 오전 캐러밴은 테이라의 위성 정거장 에테르눔에 입항했다. 무역품과 보급 물자를 담은 왕복선이 오르내리는 날이 언제나 그렇듯이 술렁이는 분위기였다. 주문한 기호식품이나 취미용품을 배달받은 연구원들이 환성을 지르고, 가십거리에 목마른 직원들은 휴게실에 삼삼오오 모여 정거장의 소식과 새로운 승선객에...
캐러밴 문화예술교류연구소 언어문화연구부 고문서 해독 · 복원 · 번역 전문가 제레미아 레마르 개인 연구실 거창하기도 하지. 그는 투덜거리며 문을 열었다. 연구실 내부는 아직 정리가 끝나지 않아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기숙사에서 사용하던 개인 물품을 대강 쓸어담은 상자는 반쯤 열린 채 보조 데스크 위에 놓여 있었다. 카페인이 절실했지만 애용하던 머그컵은 아직 ...
※ 2018.09~2022.02 연재한 장편소설 '뮤즈 온 캐러밴'의 가필수정본 재연재입니다. 연구소장의 사무실 온도는 함 내 환경정책에 의해 일정하게 유지되는 실내 온도보다 항상 조금 낮았다. 그는 이 방에 들어설 때마다 언제나 약간 움츠러들었다. 서늘한 기운이 목덜미를 타고 스며드는 탓인지, 마주 앉은 상사의 미소가 그로 하여금 이유 모를 불안을 느끼게...
◆ 중앙통제부 함장 율렉 드빌루드 마기넬 시미타르 방위대 총대장 타비아 드빌루드 아우레우스 ◆ 정보보안관리부 보안실장 율마 래버틴 ◆ 윤리위원회 메라 나일 그레이스 ◆ 시미타르 방위대 [정찰비행단] 정 상인 아주르 세윅 에레비스 어윈 [전투비행단] 탄야 루빅 피비 클라우드 [전술연구부] 알베로 테스타 [무기공학부] 메건 에바스 레인스톰 [엔지니어팀] 라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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