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련한 티탄 척후병과 호기심 가득한 일라나이 기록자가 치열한 탐색전을 벌인 직후, 침대 위는 그야말로 전쟁터와 같은 몰골이었다. 난장판이 되어버린 시트 위에 뒤엉켜 누운 두 사람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그녀는 나른하게 풀어진 얼굴로 티탄 여성의 단련된 육체가 남긴 깊고 축축한 여운을 만끽중이었으나……정작 그것을 선사한 S는 거의 망연자실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는 결국 자신에게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가 아무리 충실한 연인이라 해도 갑작스레 생겨난 빈자리마저 전부 채울 수는 없었다. 그러니 그녀가 다른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 상처 입은 마음에 위안을 얻고 싶어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이건 아주 자연스럽고 정상적인 상황이었다. 적어도 일라나이 기준으로는 말이다. 게다가 작정을 하고 밀어내...
하지만 남자는 손쓸 틈도 없이 변호사의 사무실에 불려가 야단까지 맞아야 했다. “상식의 선을 지키기가 그리 어려워?” 그레이스 변호사는 남자를 독대하자마자 호된 일갈을 퍼부었다. “대단한 성인군자 노릇을 기대한 적도 없었지만 수준이 이정도로 바닥일줄은 몰랐어.” “마치 제가 천인공노할 중범죄라도 저지른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윤리위원회가 임직원 개개인의 사...
“내가……당신을 사랑해.” 남자는 지독한 통증을 견디듯 이를 악물고 되뇌인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나.” “오. 세상에―아뇨. 절대로!” 그녀는 별안간 소리내어 웃었다. “당신은 여전히 ‘착각’하고 있군요. 사랑이요? 그건 ‘절대’ 사랑이 아니에요. 당신의 멍청한 ‘욕심’일 뿐이지.” 남자의 여윈 얼굴이 벌건 수치심으로 물든다. “솔직함을 원한다 하지 않...
한갓진 개인 연구실 구역 복도에 소란이 일었다. “당장 나가요!” 마침 복도를 순찰하던 안전요원 S는 갑작스러운 소동에 흠칫하며 제자리에 멈춰선다. 갑자기 연구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누군가가 문 밖으로 내동댕이쳐지는게 아닌가. 곧바로 조그만 손이 튀어나와 비틀거리는 검은 머리 남자의 가슴팍을 세게 떠밀었다. “더는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요. 다시는 오지...
"그래서 이번에는 뭐야?" "사생활입니다." 콧잔등이 시퍼런 색으로 부어오른 TP가 작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놈은 방금 안전요원 휴게실 한복판에서 동기와 주먹다짐을 벌이다 발각된 참이었다. 코에서 쏟아진 벌건 핏물이 턱이며 입가를 흥건하게 적신 탓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엊그제 졸업한 어린애들도 아니고 나이도 처먹을 만큼 처먹은 놈들이 직장에서 서로 패죽...
장애물로 가득한 좁은 골목을 어마어마한 속력으로 주파한 오토모빌은 어느새 밤의 번화가를 질주하고 있었다. 어두운 창문 너머로 지나가는 익숙한 풍경에 안도감이 눈사태처럼 밀려들었다. 눈머리가 뜨끔하더니 눈물이 왈칵 터진다. “슈, 슈리 씨이이…….” “어이구, 다 큰 어른이 울고 그래.” 소년은 어린애처럼 울며 매달리는 그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북북 문지른다....
캐러밴 문화연구소 콜로니 아르케 지부 수석 연구원 □□□은 근무 십년차의 수석 연구원이었다. □□□은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여기는 소란스러운 우주의 중심에서 떨어져나온 조그만 티끌 같은 곳이었다. 세달에 한번 찾아오는 물자보급선과 공용 네트워크만이 세상과의 유일한 연결점이었다. 깊고 고요한 어둠 속에 숨은 조그만 유리돔 안에서 세간의 관심을 피해 살아가는...
그는 내내 울었다. 몸을 누일 자리를 찾아 땅거미가 내려앉은 이데아의 도심을 헤매며, 성수기라는 이유로 터무니없는 가격을 치르고 간신히 구한 단칸방의 눅눅한 침대 위에 그녀를 데려다 앉히며, 온통 쓸리고 터진 손가락마다 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감아주며, 눈물이 말라붙은 얼굴에 수도 없이 입을 맞추며. 종일 내린 빗물이 모두 그의 눈물샘에 고이기라도 한 것처럼...
객실에 들어선 순간 서늘한 긴장이 엄습했다. 그녀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남자를 응시하는 곧은 시선에 담긴 것은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운 경계심이다. 눈에 띄게 움츠러든 그가 희게 질린 입술을 깨무는 것이 보인다. 예상치 못한 날선 분위기에 남자는 드물게 당황한다. 말다툼이라도 한건가. 그런 것이라기에는 명확하게 남자를 향하는 시선이었다. 무거운 침묵 ...
그와 그녀가 위로와 온기를 나누는 사이 아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계책을 짜냈다. 목표는 남자와 에리히 슈미츠의 충돌을 막는 것과 그와 그녀의 안전을 지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무도 다치지 않는 것이었다. 한참이나 숙덕거리며 계획을 세우고 역할을 분배하던 아이들은 마침내 굳은 결의를 다지며 각자의 위치로 흩어진다. 동생은 비장한 얼굴로 두 팔을 벌리고 ...
유로파 레기온 끄트머리의 조그만 회색 집에 손님이 들이닥쳤다. 본디 예정대로라면 그레타 인문대학을 견학하고 있을 시간이었으나 동생이 들이민 사진 한 장으로 인해 모든 계획이 뒤틀어지고 말았다. 당황한 나머지 말문이 막힌 동생은 한참을 허둥거리다 정확한 설명을 위해 지원군이 기다리는 집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요란한 차림의 소년과 제미마의 연인인 토모요가 ...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한 컷씩 넘겨보는 카툰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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